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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전략가 사도 바울

  • 관리자
  • 22.07.09
  • 15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 받은 사도 바울의 행적과 그의 서신들을 통하여 우리는 선교사로서의 선교 전략가로서의 바울을 살펴볼 수 있다. 우리는 바울에게서 현대 교회가 당면하고 있는 많은 선교적 과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지침들을 발견할 수 있다. 사도행전에 나타나는 모든 선교활동은 성령에 의한 선교이지만 분명한 전략이 나타난다.

알렌은 바울의 선교전략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는 미리 생각한 계획이 없었으며, 성령이 인도하시는 대로 갔다. 그는 열려진 문을 찾았으며, 신자들을 모으기에 가장 적당한 중심지를 택했으며, 그리스도에게로 사람들을 회심시키는 것이 그의 분명한 목적이었다. 그는 미래의 회심을 위한 기초를 준비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신속히 자립(self-governing), 자치(self-supporting), 자전(self-propagating) 전파하는 교회를 설립했다. 그는 외국 돈으로 일군을 고용하여 교회를 지으려 하지 않았다.

 

구원은 개인단위이지만 베드로와 바울 등 전도자들은 그룹 단위로 회심을 가져 온 것은 분명하다. 맥가브란의 선교이론은 사도행전의 그룹단위의 회심에서 집단개종운동(People Movement)이론을 수립하였다. 사도행전은 선교방법과 개종을 3천명, 5천명, 다수, 많은 사람, 도시 및 가정 단위로 말한다.

 

사도 바울이 이 에베소 원형 극장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였을 때 25,000명이 회심을 했다고 한다. , 은으로 알테미스(Artemis) 여신상을 만들어 팔던 가게들은 사도 바울로 인해 막심한 피해를 보게된다. 그들은 모의 한다. 바울을 제거하기로, 이 사건으로 바울은 떠날 수 밖에 없었다.

 

이곳이 고린도에 있는 사도바울교회이다. 이 교회는 그리스 정교회 소속이며, 지금 현재도 예배를 드린다. 이 석판은  위 교회 역대 목사님(신부님)을 기록 해 놓은 석판(헬라어) 1대 목사님이 사도 바울, 2대가 디모데이며 3대가 아볼로…(?)

성경을 통해 볼 때 사도 바울은 3차까지의 선교여행에서 선교기지를 중심으로 이방인 교회들을 끊임없이 돌보고 지도자 훈련을 시켰으며,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지역(에베소, 고린도)에서는 2, 3년을 머물면서 집중적으로 제자훈련을 실시하였다.

그는 핍박이 있는 곳에는 탄력성 있게 대치하였으며 거기 세워진 교회들을 계속적으로 양육하였다( 14:19~28, 15:41, 21:1~7).

사도 바울이 1-2-3차의 선교여행과 로마로의 여행에서 횟수로 2-3-4-2년을 순회하면서 소아시아 전역과 그리스, 로마까지 쉬지 아니하고 복음을 증거하며 영국까지도 이르렀다.

바울은 선교지 한 곳에서 평생 선교를 한 선교사가 아니고 자신을 파송한 안디옥 교회를 모기지로 하여 그 교회를 거점으로 항상 순회하며 선교활동을 하였다. 이방인을 향한 의 여러 곳에 복음을 증거한 것을 배워야 한다.

사도 바울의 1차 선교여행은 구브로섬을 지나서 소아시아 터어키 쪽을 순회하면서 몇 달간 선교하였다. 사도행전 13~14장을 보면 1차 선교 여행시 다녔던 선교지는 안디옥 실루기아 바보 살라미 버가 안디옥 이고디온 루스드라 더베 - 루스드라 이고디온 안디옥 버가 안달라아 안디옥 등이었다.

곳곳에서 모이는 장로들을 현지의 리더로 세우고 그들에게 3자 원칙에 의거한 교회를 세우도록 하였다. 2차 선교 여행도 1차 선교 여행 때 설립한 교회들을 격려하고 든든히 세워주는 차원에서의 선교여행이었다( 15:36).

3차 선교사역 가운데 재정적인 어려움이 있을 때에도 장막을 짓는 Tentmaker가 된 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범을 보여주고자 함이었다.

18장의 내용과 마찬가지로 사도 바울은 텐트메이커로서 자신의 일을 하면서 자급자족하는 방법으로 선교를 한 것이다.( 20:34-35)

사도 바울은 개인 위주의 선교활동보다는 팀 선교를 하였다. 그는 혼자 선교사역을 담당하려 하지 않고 가는 곳마다 동역자들을 발굴하여 사람들이 그와 더불어 선교사역에 참여하도록 하였다.

그의 동역자들은 다양하였다.

레위인 바나바, 한쪽으로만 유대인의 피를 받은 디모데, 헬라인 디도, 유대인이 아닌 의사 누가, 회당장이었던 소스데네,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 아볼로, 마가와 실라 등 그의 동역자를 모두 열거하기는 어려우며, 그 출신도 각 계 각 층에 퍼져있음을 알 수 있다. 바울과 바나바 간에 마가 문제로 인한 불화도 있었지만, 그 불화 때문에 그들은 결코 팀 활동을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바울은 바나바를 사도로 칭찬하였다(고전 9:6).

바울은 선교사역을 시작하기 전 안디옥에서 바나바와 더불어 가르쳤고 1차 선교여정에서 바나바와 요한 마가를 동역자로 삼았다. 요한 마가의 일로 바나바와 결별한 후에는 실라와 동행하였고, 루스두라에서는 디모데를 동역자로 선택하였고 누가는 드로아에서 합류하였다.

또한 소바더, 아리스다고, 세군도, 가이오, 두기고, 두로비모 등의 동역자들의 이름이 사도행전 20:4에 소개되었고 그의 서신서들에서도 에바브라, 데마, 에바브로디도, 아깁보, 브리스길라, 아볼로, 디도, 뵈뵈 등의 이름이 등장하고 있다.

로마서 16장에서 바울은 27명의 사람들에게 일일이 이름을 들어 문안하고 있는 데 그들 중 대부분은 바울의 동역자들이었다.

 

누가와 디모데 같은 동역자들은 오랫동안 바울과 협력하였으며,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간간이 그와 함께 일하였다.

스스로 협력한 사람이 있었고(고전16:17), 바울이 청하여 그렇게 한 사람도 있었다(2:23). 그들은 교회의 소식을 바울에게 알려왔고(살전3:6), 바울의 지시를 교회에 전하기도 하였다(4:7).

그는 외로운 전도자가 아니라 많은 전도자들과 선교사들을 지휘한 선교 사령관이었다고 할 수 있다. 동역이나 협력이 극히 어려운 한국 교회는 초대 교회의 팀전도에서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

 

서신서에서 선교의 방법과 전략을 여러 가지로 분석할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적응의 원리이다.

그는 유대인이면서 헬라 문화에서 교육을 받았고 로마의 시민권을 가져 국제인으로 활약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었다.

그는 더 많은 사람들을 얻기 위해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처럼, 헬라인에게는 헬라인처럼 대함으로써 복음 대상자의 문화를 수용하려고 하였다(고전 9:19-22). 바울의 이 적응의 원리는 겸손을 의미하지만 선교전략 면에서 볼 때 후대 세계선교의 모델이 되어졌다. 마테오리치, 사비엘, 허드슨테일러 등 많은 선교사들은 선교지에서 바울의 적응의 원리를 실천하였다.

복음이 유대인에서 이방인으로 넘어갈 때 할례 등 유대의 문화와 의식을 어느 정도 이방인 교회에 부과하느냐 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예루살렘 총회를 소집하였다. 선교를 위한 총회를 개최하여 결론은 복음과 유대의 의식과 문화를 분리하고 더 이상 유대인의 의식을 이방인에게 부과하지 않고 다만 이방인의 부도덕을 금지하도록 하였다.

 

바울은 복음의 불변하는 진리를 고수하되 부차적이고 문화적인 것이라고 판단되는 것을 기꺼이 양보한다는 전략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점이 오늘날 우리가 선교 현장에서 회심자들이 본질적인 복음의 내용만이 아니라 부차적인 것들까지도 우리에게서 배우고 따라주기를 바라는 현상과는 전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복음만이 아니라 우리의 관습이나 문화까지 전해주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복음에 관한 한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 . . . . .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1: 8-9)라고 선언함으로써 복음에는 타협이나 양보가 있을 수 없음을 밝히 보여주었다. 그 대신 그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복음 이외의 문화적인 면에 있어서는 철저히 적응이라는 원리를 따랐다.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처럼, 율법 아래 있는 자에게는 율법 아래 있는 것처럼, 약한 자에게는 약한 자처럼 됨으로써 '더 많은 사람들'을 구원에로 인도하려고(고전 9: 19-23) 했던 것이다. 이런 원리는 때로는 일관성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바울은 할례 문제에 초월해 있었지만 디모데에게는 할례를 행하려 했고( 16: 3) 디도에게는 거부한 것( 2: 3-4)이다. 우상의제물 문제에 있어서도 그는 이미 초월적 사상을 가지고 있었으나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다시 말해서 선교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치 않게 하리라"(고전 8: 13)고 선언한다.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게 된 궁극적인 목적은 회심과 교회설립이며, 세워진 교회가 주 안에서 바로 서는데 있다. 19세기에 등장한 자립 선교 원리는 선교의 목적을 자립, 자치, 자전 전파하는 교회의 설립에 두었는데 이것은 성경에 입각한 것이다.

그는 토착적인 자비량선교 운동을 일으키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가 개척한 선교공동체들은 반드시 자립적이고 지역사회에 깊이 관련된 것이어야 했다( 18:3 자립, 18:4 자전, 18:15 자치).

또한 그는 교회를 설립함에 있어서 결코 경쟁의식이나 직업의식을 철저히 배격하고 다른 사람이 이미 기초를 놓은 곳을 피하는 신사도의 정신을 보였고, 교회를 설립한 후에는 양떼들을 성령과 주의 말씀에 부탁하고 장로들을 세운 후, 과감히 미개척지로 선교지를 옮겼다.

 

바울의 선교 전략은 삼자원리(three self principle)를 활용하는 것이었다.

그가 세운 교회들은 자치(self-governing), 자립(self-supporting), 그리고 자전(self-propagating)하는 교회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바울이 세운 교회들은 스스로 지역 복음화의 사명을 위해 일하였으며 외부의 통제나 지도를 받지 않고 오직 성령에만 의존하면서 세워진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일들을 스스로 처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신생 교회들은 재정적으로도 외부의 어떤 힘에 결코 의존하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 일함으로써 자신과 동료들의 필요를 감당하였고, 앞에서 말한대로 신생 교회들도 재정적으로 자립하게 했으며 동시에 가난하고 어려운 교회들을 위하여 그들의 궁핍을 외면하지 않고 도우도록 했다.

그러나 그는 또한 스스로도 교회가 보내주는 선물을 거절하지 않고 감사함으로 받아 사용하였다( 4: 15-16). 이러한 원리는 오늘의 선교에서는 보기 힘든 원리였다고 할 수 있다.

 

바울은 교회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도록 하기 위하여 재방문 하였으며 선교기지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대부분의 서신서들은 선교에 의하여 세워진 교회들이 건전하게 성장하도록 하기 위한 특수 상황에서 쓰여졌다.

사도 바울은 교회를 자라게 하시는 자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이심을 알았지만 사람을 도구로 하여 자란다는 것을 확신하였다. 바울은 교회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며 건전한 교리와 바른 생활을 가지도록 하기 위하여 설립한 교회를 재방문하였다(1:11-12, 살전 2:17-19).

바울은 설립한 교회를 견고케 하기 위하여 재방문 하였을 뿐만 아니라 지도자들을 임명하거나 파송하였다. 바울은 그의 충실한 제자를 데살로니가 교회에 파송하였으니 이는 그 교회를 굳게 하고 믿음으로 위로하기 위함이며(살전 3:2), 디도를 그레데 교회에 파송한 것도 같은 목적이다( 1:5).

 

. 안디옥(시리아) >실루기아 >살라미 : 안디옥 교회에서 안수받고 전도목사로 파송받아 1차 전도여행을 떠남. 2. 바보: 거짓 선지자 바예수를 소경이 되게함. 총독이 복음을 받아들임. 3. 버가: 동행한 요한이 떠남. 4. 안디옥(비시디아): 일부 유대인들의 시기로 바나바와 함께 핍박받음. 5. 이고니온: 돌에 맞을 뻔함. 6. 루스드라: 나면서 앉은뱅이된 자를 고침. 돌에 맞아 죽을 뻔하다 살아남. 7. 더베 8. 이고니온과 안디옥: 제자들을 격려하고 교회의 장로를 세움. 9. 비시디아 지역 >버가 >앗달리아  10. 안디옥 도착:전도여행 보고함.

 

바울은 설립한 교회를 견고케 하기 위하여 재방문 하였을 뿐만 아니라 지도자들을 임명하거나 파송하였다. 바울은 그의 충실한 제자를 데살로니가 교회에 파송하였으니 이는 그 교회를 굳게 하고 믿음으로 위로하기 위함이며(살전 3:2), 디도를 그레데 교회에 파송한 것도 같은 목적이다( 1:5).

 

사도 바울의 제 2차 전도여행의 특징은 복음의 유럽진출

유럽은 향후 모든 세계의 중심지로서 복음의 세계화 전략에 가장 중요한 경로가 되었다. 

바울의 전도전략이 갖는 경향은 복음의 세계화와 그 시기에 대한 임박성이다. 

사도 바울은 당시 예수님의 재림이 보다 빠른 속도로 진행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복음은 시급하고 빠른 속도로 전파되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안디옥-> 마가의 동행 문제로 바나바와의 갈등 (사도행전15:37~39)-> 더베, 루스드라(사도행전15:40~16:1)-> 루스드라에서 디모데의 합류(사도행전16:3)-> 드로아(사도행전16:6~8)-> 드로아에서 마게도냐 사람의 환상을 봄(사도행전16:8~10)-> 빌립보(사도행전16:11~12)-> 빌립보에서 루디아와 간수의 회심(사도행전16:14, 33)-> 데살로니가(사도행전17;1)-> 데살로니가에서의 강론(사도행전17:2)-> 베뢰아(사도행전17:10)-> 아덴에서의 아레아바고 설교(사도행전17:22)-> 아덴, 고린도(사도행전18;1)-> 1 6개월 동안의 고린도 사역(사도행전18:1~11)-> 에베소(사도행전18:19)-> 예루살렘(사도행전18:22)-> 안디옥(사도행전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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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세계 선교가 당면한 문제는 교회 없는 지역에 교회를 개척해야 하지만 아울러 이미 세워진 어린 교회들을 참 제자가 되도록 양육하며, 원주민 지도자들을 세우는 일이다. 아프리카 교회가 당면한 시급한 문제는 목사와 평신도 지도자들의 부족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바울의 선교전략은 지금도 잘 적용되어야 한다.

한편 그는 선교여행을 마치고 항상 안디옥으로 귀환하였다. 예루살렘의 영향력을 감안하여 바울은 이 교회와의 연계관계를 유지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충분히 깨닫고 있었다.

그는 적어도 다섯 차례에 걸쳐 예루살렘을 방문하였고 그때마다 그곳의 교회 지도자들과 만남을 가졌다. 또 로마에 있는 교회에 편지를 보내어 그의 스페인 선교에 대한 지원을 요청했다(15:15-24). 이는 로마제국 서부에서의 선교활동을 위해서는 이태리에 선교기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사도행전의 선교는 인구가 밀집된 대도시 등 전략적 가치가 있는 곳에서 시작하였다. 바울의 선교는 도시 교회인 안디옥 교회에서 시작하여 빌립보, 데살로니가, 고린도, 아덴 등 지방에 중심도시를 먼저 정복하였으며 그 도시의 신흥 교회가 주변 지역을 전도하게 되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은 바울은 특히 가장 인구가 많고 번성한 4개의 지역, 갈라디아, 소아시아, 마케도니아, 그리고 아가야에서 집중적으로 전도하였다. 도시를 기준으로 한 것이 아니라 지역을 기준으로 했다.

바울의 선교활동기간은 12-15년간으로 추정되고 이렇게 짧은 기간 동안에 바울은 이 4개 지역에서 힘있고 번성하는 자립교회를 세우는데 성공하였다

 

바울은 바나바와 함께 제자들을 가르치며 1년 남짓한 시간을 보낸 바 있는 안디옥을 기점으로 출발하였다. 안디옥은 여러 종족들이 섞여 사는 도시였고 동서의 상업을 연결하는 요충지로서 예루살렘으로부터 퍼져 나아가기 시작한 기독교 신앙의 확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팔레스타인으로부터 희랍, 로마로 들어가는 관문이었던 것이다.

빌립보와 같은 로마의 식민지도시, 데살로니가와 같은 상업도시, 아덴과 같은 문화의 중심지, 그리고 에베소와 같은 로마제국의 종교적 중심지도 있었다. 로마 제국의 신속한 복음화를 위해서 필수적이라고 생각되는 도시들만 선별하여 복음을 전했다.

에베소는 바울이 활동했던 가장 중요한 도시였다. 이 도시는 아시아 지역의 수도일 뿐 아니라 유명한 아데미 신전이 자리잡고 있는 곳이어서 로마제국의 종교적 중심지였으므로 매년 수십만 명의 순례자들이 방문했으며 상인들은 막대한 관광수입을 벌고 있었다(19:25-27).

 

에베소의 중요성은 바울이 1개도시 체류기간 중에 가장 긴 기간인 3년 남짓이나 그곳에 머물렀다는 사실로부터 알 수 있다(20:31). 또한 그가 에베소를 떠날 때 디모데로 하여금 그곳에 잔류하여 주님의 일을 계속하도록 했고(딤전 1:3), 브리스길라, 아굴라, 아볼로가 에베소에서 활동하였다(18:24-26). 그 후 사도 요한도 그곳에 정착하여 거주한 사실에서도 선교적 의미에 있어 에베소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골로새는 에베소에서 동쪽으로 90마일 가량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 도시로서, 그 곳에는 교회가 세워져 있었고 그 교회의 지도자들의 이름은 에바브로와 두기고였다. 에바브라는 골로새 태생이면서 그 교회를 설립한 인물로서(1:7) 바울의 동역자가 되었다. 에바브라는 에베소에서 귀향하여 복음을 전파하고 고향에 교회를 세운 것이다.

 

바울의 선교적 소명감은 '멀리 이방인에게'( 22: 21) 복음을 전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알려진 모든 지역을 찾아가 복음을 전할 수는 없는 것이기에 당시의 번영하는 4개 지역 곧 아시아에 속한 갈라디아와 소아시아, 유럽에 속한 마게도니아와 아가야 지방에서의 전도 활동에 집중하였다. 이런 집중적인 방식을 통해 그는 10년 만에(AD 47-57) 전혀 교회가 없던 이 지역들에 많은 교회들을 든든하게 세우는 놀라운 역사를 이루었던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바울은 세계의 모든 이방인을 한꺼번에 복음에로 인도하려고 시도도 하지 않았다. 단지 그는 아직 복음화되지 아니한 몇몇 지역에 초점을 맞추고, 그것도 그 지역의 중심이 되는 도시들에 교회를 설립하였다. 회중을 많이 모으는데 힘을 쏟기보다는 교회를 세우고 자립적으로 사역을 감당할 수 있을 때까지 거기에 머물면서 일하였다.

그리고 일단 스스로 설 수 있다고 판단되면 그 일들을 다른 동역자들에게 맡기고 다음 사역지 곧 아직 복음을 전혀 듣지 못한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복음을 전하러 갔다. 이렇게 도시 중심으로 세워진 교회는 그 주변 지역에 복음의 빛을 비추는 역할을 감당할 수 있었다.

이렇게 세워진 교회는 언제나 새로운 선교기지가 되는 것이었다. 이 밖에도 대도시 중심의 선교는 여러가지 유리한 조건을 제공하였다. 그것은 로마의 행정 중심지로서 적어도 바울처럼 신변의 위협을 느끼면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에게는 신변 보호를 보장받을 수 있었고, 희랍 문화와 교육의 중심지로서 통역을 필요로 하지 않으면서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곳들은 상업과 교역의 중심지로서 흩어진 유대인들이 회당을 가지고 있는 곳들이었으므로 유대인들에게 먼저 전하고 그들이 거부하면 이방인에게로 향했던 바울의 전도 우선순위와도 부합되는 것이었다.

실지로 회당 자체가 일종의 선교적 사명을 감당하고 있었으니 곧 혈통으로는 이방인이었으면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God-fearers)이 있었고, 그들은 흔히 복음의 선봉장들이 되었기 때문이다.

 

유대인 회당을 이용한 전도활동
바울은 한 도시에 도착하면 곧장 회당을 찾곤 하였다. 그는 회당에서 세 가지 종류의 이질적인 집단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이들은 유대인들, 개종자들,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방인들 등이었는데, 이들은 모두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알고 있었고 구약성서에 친숙해 있었으며 메시야의 오심을 고대하고 있는 자들이다. 바울은 다양한 청중들 중 공감대를 형성하는 자들에게 주력하여 복음을 전했다.

이교적인 배경을 가진 것이 틀림없는 빌립보 감옥의 간수는 즉석에서 세례를 받았다(16:33). 어린이와 노예들을 포함했을 것으로 추측되는 그의 온 가족이 그와 함께 복음을 받아들임과 동시에 세례를 받았다.

바울의 전도여행에 있어 일차적인 목표는 세계를 신속히 복음화 하는 것이고 궁극적인 목표로서 많은 지 교회들을 세우는 것이었다. 지교회를 세우는 일은 단기간의 활동으로는 불가능한 것 이었으므로 바울은 목표가 달성될 때까지 충분한 기간을 각 도시에 머무는 것을 통례로 했다.
온갖 시련과 위험에는 불구하고 그는 어떻게 해서든 최소한 2-3개월은 한 도시에 머물곤 했으며 고린도나 에베소 같은 곳에서는 훨씬 긴 기간을 체류하기로 하였다.
바울이 세운 교회는 세계의 복음화를 목표로 하는 선교지향적인 교회였다. 그는 인구가 밀집되어 있는 주요 도시들에 선교 교회를 세웠고 이렇게 세워진 교회들은 후에 자기 지역에서 집중전도(saturation evangelism)를 감당하였다.

 

그의 전략의 하나는 융통성이었다. 바울은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처럼, 이방인에게는 이방인처럼 대하였다. 바울이 디모데에게는 할례를 행하기로 하고(16:3) 디도에게는 거부했던 것은(2:3-4) 복음전파 사역의 유익을 위해서였다. 바울은 모든 사람이 하례에 관한 자신의 견해에 동조하고 있지는 않다는 사실을 아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무지나 편견을 기꺼이 받아들이고자 했던 것이다. 복음을 전하는 가장 본질적인 목표를 위해 복음의 핵심적인 부분이 아닌 문제들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형제들과 다툼이 일어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아마도 바울이 이슬람교도를 위한 선교사라면 돼지고기를, 힌두교들을 위한 선교사라면 쇠고기를 먹지 않을 것이다. 대상에 따라 다른 접근 방법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그는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는 사람이었다. 회당에서나 시장 거리에서나 공회당에서나 가정 집에서까지도 복음을 전할 기회를 만들었고 상황에 따라 다른 접근 방법을 찾아 이용하였다.

아덴에서는 이교 철학자들의 한 가운데 서서 그들의 문화와 종교에서 접촉점을 찾았고, 물리쳐야 할 우상숭배에 대한 공격을 자제하고 오히려 그들의 종교성을 들어 그들을 칭찬함으로써 복음전파의 기회로 삼는 것이었다( 17: 22-31).

선교 방법의 하나로 말로만 전하는 것이 아니라 인격적인 삶의 모범을 통해서도 복음을 전하였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바울은 섬김과 나눔의 삶을 가르치려 하였다. 바울은 새신자들에게 그의 근면한 노동으로 얻은 수익으로 곤경에 처해 있는 그리스도인이나 비그리스도인을 도와야 한다는 점을 가르치기 위해 손수 일한 것이다(고후 8:1-2).

그는 그리스도의 사도요 종으로서 본래 가지고 있던 고귀한 것들(바리새인, 학식, 로마 시민권 등)을 오히려 해로 여기고 배설물처럼 여기면서 지도자이되 섬기는 지도자(servant-leadership)로서의 삶의 본을 보인 것이 선교의 한 수단이 된 것이다.

로마서에서 그는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케 하기 위하여 나로 말미암아 말과 일이며(what I have said and done)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15: 18)고 함으로써 말과 더불어 행함이 복음전파의 수단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또 데살로니가 전서에서는 "너희는 . . . . . . . 우리와 주를 본받는 자 되었으니"(1: 6)라고 함으로써 그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직접 모범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에 바울에게 이끌리어 나왔고 그를 통해 주님을 알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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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아신대학교 대학원(ACTS)에 비즈니스선교학 과정 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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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렌·언더우드·아펜젤러가 처음 밟은 부산항”… 부산에 세 선교사 ‘입국 표지석’ 세운다
"팬데믹 이후 선교 환경 급변, 미래 설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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