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영 칼럼] 교회는 어떤 공동체인가?

정재영 교수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종교사회학 입력 2024.06.05

공동체의 다양한 의미

흔히 교회를 ‘공동체’라고 말한다. 성경에서는 한 몸과 지체에 대한 이야기로 공동체가 표현된다. 
신학에서는 교회에 대하여 예배 공동체, 증인 공동체, 하나님백성 공동체라는 말을 사용한다. 사회학에서도 종교의 사회적 차원이라는 측면에서 공동체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그러나 공동체라는 말이 한국 교회에서 널리 쓰이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 공동체라는 말은 ‘반체제’, ‘반정부’라는 인식이 있었고, 특정 부류에 한정해서 사용되는 말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공동체가 훨씬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고 교회 안에서 사용하기에도 불편이 없을 뿐만 아니라 신앙생활의 매우 중요한 요소로 여겨지고 있다.
한 미국의 사회학자가 공동체라는 말의 의미를 정리한 결과 99가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똑같이 ‘공동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그것의 구체적인 의미는 서로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예전에 교회 중직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의식 조사에서 교회가 공동체라는 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질문했는데, 응답자들 모두 “교회는 당연히 공동체이다”라고 동의했다. 그러나 공동체의 구체적인 의미를 묻는 질문에는 분명한 답을 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았다. 
어떤 이는 ‘가족과 같이 돌봐주는 곳’이라고 했고, 어떤 이는 막연하게 ‘사랑이 넘치는 곳’이라고 했으며, 어떤 이는 ‘무슨 일이 생기면 달려가는 곳’이라고 했다. 
이런 대답들이 틀린 대답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공동체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논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막연한 표현으로만 답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교회가 공동체라고 할 때, 그것이 어떠한 공동체인지 대하여는 의견이 엇갈리기도 한다. 똑같이 공동체라고 말하면서도 어떤 이는 ‘상하 서열의 피라미드 구조’를 떠올리면서 지도자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효율성과 성과를 추구하는 조직체를 연상한다.

어떤 이는 인격적인 관계를 중시하면서 일보다는 사람 중심으로, 성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하면서 서로의 공감대를 형성해 가는 것이 공동체의 중요한 차원이라고 생각한다. 
공동체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지도자의 역할이 달라지고 교회 구성원의 역할도 현격하게 달라진다. 이와 같이 교회는 스스로 공동체임을 표방하지만 그 공동체의 성격이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이루어 가느냐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교회 공동체의 성격
이제 단순히 교회가 공동체라고 선언하기보다 어떤 공동체여야 하는지에 대해 논의해야 할 때다. 그렇다면 교회는 어떠한 공동체가 돼야 하는가? 성경에는 공동체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가 포함돼 있다. 
대표적으로 사도행전에 나타나는 초대교회는 ‘유무상통하는 공동체’라고 이해된다.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가 내 것, 네 것 가리지 않고 필요에 따라 나누는 본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공동체의 모습은 구약에서도 발견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광야에서 가나안으로 인도하셨고, 이후에 포로기를 거쳐서 귀환하는 과정 모두가 이들을 하나님을 예배하는 신앙공동체로 훈련시키는 과정으로 묘사된다. 
특히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개혁은 하나님의 예배 공동체를 확고히 세우기 위한 과정으로 해석될 수 있다. 성전을 짓고, 율법을 받고 성벽을 짓는 것 모두가 예배 공동체를 세우기 위한 과정이다. 
여기서 에스라는 율법을 중심으로 영적인 업적을 이룸으로써 신앙 공동체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다. 

그리고 에스라가 율법을 통해서 공동체로서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모습은, 공동의 의식과 생활양식을 중요하게 여기는 오늘날 공동체 개념과 일치한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게 여겨진다. 이러한 전통이 신약 시대를 거쳐서 오늘날까지 교회를 신앙 공동체로 이해하는 뿌리가 되고 있다.
이런 성경의 이야기에서 공동체 개념의 뿌리를 찾을 수 있지만, 현실 교회에서 공동체 개념은 여전히 막연하다. 한국 사람들은 가장 이상적인 공동체 모형을 가족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래서 친근하고 화목한 분위기를 ‘가족적인 분위기’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이러한 이해는 공동체 개념의 아주 작은 면밖에 보여주지 못한다. 또한 우리 사회의 가족이 그리 바람직한 모델이 된다고 보기도 어렵다. 생사고락을 함께 하는 공동 운명체로 여겨 가족 동반 자살을 하는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또한 교회를 신앙 공동체라고 말하지만, 큰 범주에서 같은 기독교 신앙일 뿐 교단과 교파 또는 진보, 보수 노선을 따라 제각각의 신앙관을 가지고 있는 실정이다. 

배려와 포용의 공동체
현대의 공동체 이론가들은 공동체를 지역이나 공간과 같은 물리 차원의 조건과 관계없이 사회 공간에서 이뤄지는 인간관계의 망으로 인식한다. 이러한 관점에 따라서 공동체 개념은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공동의 의식과 공동의 생활양식을 통해 결속감이 증대된 사회 집단으로 이해된다. 
그리고 공동체는 서로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도덕 공동체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공동체는 단순히 특정 공간에 개인들이 모여 있다는 뜻이 아니다. 사회성으로 서로 의존하고 토론과 의사 결정에 함께 참여하고, 실천을 함께 하는 사람들로 이뤄진 집단을 가리킨다.

그런데 공동체는 곧잘 집단주의와 혼동되기도 한다. 개인보다 공동체를 우선시하게 되면 공동체주의는 집단주의로 변질될 수 있다. 그래서 개인의 권리를 무시하고 집단의 이익이나 획일화된 의식을 강요할 우려가 있다. 
그러나 공동체를 어떻게 정의하든지, 개인을 무시하는 집단을 공동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최근 한국 교계에서 중요한 문제로 논의되는 가나안 성도들은 나름대로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무시당하고 관심을 받지 못했다. 
입으로는 공동체라고 말하면서도 이들을 진정으로 공동체의 일원으로 대하지 않은 채 공동체 의식을 주입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바람직한 공동체라면 개인의 권리와 다양성을 존중하면서 유기적인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공동체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 모두의 노력으로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집단의 생각을 개인에게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들의 생각을 꺼내놓고 서로 맞추고 조정해 가며 공동체 의식을 형성해 가는 것이다.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배제하거나 소외시키는 것은 공동체가 아니다. 생각을 획일화시키는 것도 공동체가 아니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 부딪히기도 하면서 협의와 조정하는 과정을 거쳐서 공동체를 이뤄가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공동체를 약화하는 것이 아니라 더 튼튼하게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공동체는 자기들끼리만의 배타적인 공동체가 아니라 삶의 영역에서 성스러움을 함께 실천하는 실천적인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한국 교회가 다양한 생각을 가진 개인들을 존중하고 포용하며 사회와도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회복함으로써 진정한 공동체로 거듭나기를 소망한다. 

정재영 교수

<출처> 데일리굿뉴스(https://www.goodnews1.com)